1. 시작 – 그는 그냥 앉아 있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공원도 아니고, 시청 광장도 아니고, 그냥 관광지도 아닌 어중간한 공간.
물 한 병, 간식 없음. 스마트링도 안 착용. AI 루틴 동기화도 끊김.
처음엔 사람들이 그를 지나쳤다.
그 다음엔 사람들이 “이벤트 NPC 아니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틀 뒤, 누군가 트윗을 올렸다:
“얘, 48시간째 같은 자세로 있음. 진짜 아무 것도 안 함.
뭔가 있어.”
순식간에 바이럴.
그를 따라 **“#무위챌린지”**가 생겼고,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는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2. 시스템 반응 – 사회는 이걸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정부는 초반엔 그냥 놔뒀다.
“요즘 젊은 애들 플래시몹 좋아하잖아~” 하고 말이다.
하지만 1주일 뒤, GDP가 0.7% 하락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한 거다.
- 회사 출근해서 회의실에 앉기만 함
- 공장에서 기계 작동 안 시킴
- 경찰도 정지 상태. 범죄자도 정지 상태. 모두가 서로를 조용히 쳐다봄
- AI도 학습 정지. 챗봇도 “이 대화의 목적은 무엇인가요?”에서 벗어나지 못함
그는 여전히, 원위치.
3. 혼돈 – 국가가 멘붕함
정부는 비상 대책을 세운다.
그의 주변을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접근금지 구역 설정.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위 충동’이 전염된다는 리포트가 나옴.
“그는 시각적 바이러스다.”
“그는 현대 사회의 부정기호다.”
“그는 인류가 만든 알고리즘의 반례다.”
결국 정부는 비밀리에 ‘작전명: 벤치 제거’ 실행.
계획은 단순했다:
벤치를 통째로 뽑아서, 그를 지하 18층으로 옮긴다.
문제는…
그는 벤치랑 안 떨어짐.
말도 안 되지만, 진짜로 그냥 안 떨어짐.
도구로도 안 되고, 폭발물도 소용 없음.
그는 벤치 그 자체였다.
4. 종말 – 그는 계속 앉아 있다
사람들은 그가 **‘가만히 있기 운동’의 시조’**라고 불렀고,
종교까지 생겼다.
“무위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 것도 하지 말라.”
“그의 침묵은 우리의 대답이다.”
“움직이면 진다.”
한 달 뒤, 정부가 붕괴했다.
모두가 무위를 택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누구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벤치 위, 그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미동도 없이.
말도 없이.
그 앞에 작은 종이 하나가 바람에 날려 붙었다.
“당신은 왜 앉아 있었나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세계는 그의 침묵으로 충분히 무너졌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