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단편소설 – #2 남의 시선으로 산 여자

사후세계 면접관 #3

그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평생 누군가의 눈으로만 살았으니까.


1. 입장 – 그녀는 거울을 찾았다

“정다희 씨, 면접실로 들어가 주세요.”

문이 열렸고, 그녀는 들어섰다.
한 손엔 손거울, 다른 손은 조심스레 치마를 내리는 제스처.
죽었는데도 여전히 단정했다.
죽었는데도 여전히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었다.

“앉으세요.”

AI 면접관은 무표정한 데이터 덩어리였지만,
그녀는 자세를 다듬고, 다리 각도를 조정하고,
입꼬리를 올리고 앉았다.

그 누구도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2. 질문 –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질문 드리겠습니다.
삶에서 가장 자신다웠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닫았다.

“…음… 사람들이 좋아해 준 적은 많았어요.
회사 회식 때 분위기 잘 띄운다고 칭찬도 받았고,
인스타 댓글도 잘 달고,
친구들이랑 여행 가서 사진도 많이 올렸고…”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그건 당신이 ‘한 행동’입니다.
그 행동이 당신이었나요?”

그녀는 또 멈췄다.

“…그때 사람들 표정은 좋았어요.”
“…그러니까, 아마… 나도 좋았을 거예요.”

면접관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당신의 로그는 선명하지만,
그 안에 ‘당신’은 없습니다.

당신의 기억은 전부 ‘남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존재는 했지만, 스스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3. 결정 –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생으로

“환생 등급: C.
비교적 해가 되진 않았지만,
‘자기 존재의 주체성 부재’로 인한 의미 결손 상태입니다.

다음 생 선택 가능합니다.”


  1. 헬스장 모서리에 놓인 깨진 전신거울 조각
  • 아무도 쓰진 않지만, 모두가 스쳐지나감
  • 항상 누군가를 반사하지만, 아무도 널 안 봄
  • 청소 중 버려질 예정이나, 아직 살아 있음
  1. 쇼윈도 안 마네킹의 오른손
  • 어색한 포즈로 고정됨
  • 계절마다 옷은 바뀌지만, 자세는 평생 고정
  • 어떤 시선은 잠깐 머물지만, 인식되진 않음
  1. 야시장 네온사인 뒤편의 고정 나사
  • 불빛을 고정함. 빛나진 않음
  • 나사가 빠지면 간판이 무너짐. 하지만 아무도 몰라줌
  • 빛은 네가 만든다. 하지만 이름은 없다

“선택하세요.”

정다희는 한참을 침묵했다.
거울을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다 뭔가…물건이네요….. 쇼윈도 안의 손이요.”
“왜죠?”

“…그래도,
누군가는 예쁘다고 생각하겠죠.
잠깐이라도.”

면접관은 조용히 끄덕였다.


4. 퇴장 –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였다

포털이 열렸다.
빛은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 쪽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거울을 꺼내지 않았다.
화장을 고치지도 않았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니까.

…진짜로,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녀는 사라졌다.

반짝이는 옷들, 지나가는 사람들, 멈추지 않는 도시 불빛 속에서
딱 그 손 하나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는 끝까지 예쁘다.


“보여지기 위해 태어났지만, 기억된 적 없는 손.”